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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피었는데... 그들은 5일째 '감옥생활'[한일병원]
 사무국  | 2012·04·16 16:27 | HIT : 2,316 | VOTE : 775 |
[현장] 도봉구 한일병원 식당 노동자 농성장... "계속 일하고 싶다"



산봉우리가 선명하게 보이는 맑고 따뜻한 날이었다. 북한산 골짜기에서 흘러온 우이천 주변에 벚꽃이 피기 시작했다. 올해 유독 개화가 늦은 개나리들이 그 아래를 채웠다. 천 주변에 조성된 작은 공원은 나들이 나온 사람들로 가득했다.

지난 14일 오후 서울 도봉구 한일병원으로 가는 길에는 봄기운이 넘쳤다. 주말이라 병원으로 오가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환자복 입은 사람과 문병 온 사람이 병원 정원을 오가며 산책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얼마 전까지 병원 식당에서 일했던 9명의 조리노동자들은 이런 봄날의 풍경에서 벗어나 있다. 적게는 7년, 많게는 30년 넘게 일한 병원 식당에서 해고된 게 찬 바람 불던 지난 1월 1일. 바로 전날까지 직원들과 환자들의 밥을 지었다. 이들은 식당 운영업체가 바뀌면서 고용승계가 되지 않았다. 겨울 홍익대학교에서 쫓겨나 논란이 된 청소노동자들과 같은 처지다. 봄이 왔지만 이들의 마음은 아직 겨울에 머물렀다.  

그 후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병원 정문 앞에 천막 치고 102일 동안 농성했다. 삭발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벚꽃이 피기 전인 지난 10일, 이들은 병원 안으로 농성장을 옮겼다. 오래 기다렸지만 병원 측은 소식이 없었고. 때마침 병원장이 새사람으로 교체된 것도 이유였다.

5일이 지났다. 그 사이 연대를 위해 찾아온 사람들을 병원 측이 내쫓으며 몇 차례 충돌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런 소식은 선거판에 묻혔다.  

도움 주던 사람들이 모두 밖으로 쫓겨났지만 노동자들은 나가고 싶어도 움질일 수 없었다. 나가면 그걸로 끝이기 때문이다. 투표도 못 했다. 씻는 건 화장실에서 해결했다. 병원에서 출입을 통제한 탓에 한동안 음식은 환자들이나 문병 온 사람들을 통해 몰래 전달받았다.  

주말이면 병원 측의 통제는 약해졌지만 여전히 정문 출입구는 응급차 두 대가 굳게 막고 있다. 컴컴한 복도에 자리를 편 그들을 병원 직원과 경찰이 감시하듯 지키고 있다.


외주용역으로 바뀐 지 13년 동안 일어나지 않은 일


▲ 조리노동자들이 농성하고 있는 병원 건물 정문을 두 대의 응급차가 막고 있다. 안 쪽은 의자로 바리케이드가 쳐진 상태다. ⓒ 최지용


'도봉구 유일의 종합병원'이라는 한일병원은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씨가 영면한 곳이기도 하다. 지난 9일 자리에서 물러난 김응수 전 원장이 그의 주치의였다. 1937년 일제 강점기에 설립된 병원은 1988년 현재 위치에 자리를 잡았고 의료법인 한전의료재단이 운영주체를 맡고 있다.

병원 식당운영은 1999년부터 외주업체로 넘어갔다. 그 전까지는 병원에서 직영으로 운영했다. 그때는 상여금도 있었고 근무 여건도 지금보다 나았다. 농성중인 노동자 가운데 두 명은 당시에도 일을 했다. 그때 더듬더듬 말을 배우기 시작한 그들의 아이들은 군대를 가고 결혼을 했다. 대부분이 식당일을 하며 가장 역할을 했다. 이들이 일터가 외주 용역으로 바뀌고 나빠진 근무 환경에도 일을 해온 이유다.  

용역으로 바뀐 이후 13년 동안 고용승계는 별 탈 없이 계속됐다. 수차례 업체가 바뀌었지만 특별한 일은 없었다. 그래서 지난 1월 1일, 2011년으로 계약이 끝나는 용역업체가 '아어홈'에서 'CJ프레시웨이'로 바뀌어도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당연히 고용승계가 이뤄질 것이라 생각했다.  

문제는 이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한 뒤 발생했다. '아어홈'은 지난 4년 계약기간 동안 한 차례도 임금을 올리지 않았다. 또 3교대로 이뤄지던 일을 2교대로 바꾸면서 조리노동자들은 하루 12시간 이상 근무를 하기도 했다. 이에 노동자들은 지난해 7월 노조에 가입하고 임금인상과 근속수당을 요구했다. 그러나 사측은 복수노조 규정을 이용해 이들에게 교섭권을 부여하지 않았다. 이들은 협상테이블에 앉지도 못했다.  

이런 상태에서 업체가 바뀌었다. 13년 동안 아무 탈 없이 이어져 온 고용승계 조항은 계약서에서 사라졌다. 노동자들의 사용자인 아어홈 측은 이들을 다른 사업장으로 발령을 냈다. 대개 병원 인근에 거주하는데, 새 직장은 청담동 등 강남 일대였다. 그 지시를 따르지 않으려면 사표를 내야했다. 농성을 시작됐다. 처음 19명이던 조합원은 현재 11명으로 줄었고 농성에는 9명만 참가하고 있다.

그 이후 상황을 정리해보자. 새해부터 식당을 운영한 '프레시웨이'는 곧바로 대체 인력을 채용했다. 물론 노조도 없고 근속수당을 챙겨줄 필요없는 '신입사원'들이다. 사측은 노동자들의 요구를 거부하고 있다. 전부터 일한 조리노동자들을 재고용하면 새로 뽑은 인력을 해고해야 한다는 이유다. '프레시웨이'는 분쟁이 계속되고 비판의 화살이 날아오자 돌연 사업 철수 의사를 밝혔다.  

한일병원 측은 여느 실사용자들처럼 '고용문제에 관여할 수 없다'는 주장을 펼친다. 병원 측은 "조리원들이 아어홈의 다른 사업장에서 일 할 수 없다고 하는 건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관점"이라며 "조리원들의 고용문제는 한일병원에서 관여할 수 없는 사안"이라고 설명한다.



"병원에 대해 너무 나쁘게 쓰지 말아줘요"


▲ 한일병원 안에는 현재 9명의 조리노동자들이 농성 중이다. 그 바로 옆을 경찰들이 지키고 있다. ⓒ 최지용


이날 병원 복도 농성장에서 만난 송영옥 한일병원 분회장은 "우리의 요구는 일하던 병원 식당에서 다시 일하게 해달라는 것 뿐"이라며 "정말 열심히 일한 거 밖에 없는데, 이렇게 쫓겨나야 하는 걸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사실상 해고가 된 지난해 12월 31일 밤과 올해 1월 1일을 잊지 못했다. 송 분회장은 "2교대로 일하면 항상 시간을 연장해 일해야 하는데 그날(31일)도 오후 8시 넘어까지 일했다"며 "일을 끝내고 그냥 가면 다시 못 올 거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나가지 말자'고 했는데 어쩔 수 없이 나오게 됐다"고 회상했다. 이들은 그날 일을 마친 뒤에 "내일부터 출근해도 월급이 없다"는 병원 영양사의 말을 듣고 자신들의 상황을 알았다.

이들은 일을 마친 뒤에도 자신들이 어떻게 될지 몰랐다. '아어홈' 측에서 2~3일 후에 새 사업장에 보낸다는 이야기만 들었다. 그곳이 강남인 걸 알고 송 분회장은 "새벽 5시부터 일해야 하는데 그 시간에 맞춰 가려면 새벽 3시에 나가야 한다"며 "전철도 안 다니는 그 시간에 어떻게 거기서 일 할 수 있겠느냐"라고 따졌다.

송 분회장에게 "노조를 만든 탓에 고용승계가 안 된 것으로 판단하느냐"고 묻자 옆에 있던 한 조합원이 거들었다. 그는 "아어홈에서 고용한 영양사가 우리보고 '그런 건 왜 만들었느냐'며 타박할 때가 많았다"라며 "노조를 탈퇴하라는 식의 직접적인 압박은 없었지만 싫다는 티가 많이 났다"고 말했다. 송 분회장도 "그런 말을 많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어떻게 일해 왔느냐"는 질문에 분통을 터트리기도 했다. 또 다른 조합원은 "딸 같이 어린 영양사들에게 큰 소리 들어가며 하녀처럼 일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며 "다그치는 건 물론 큰 소리로 혼을 내기도 했는데 자괴감을 많이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2교대로 일하는 것도 너무 힘들었다. 하루 9시간 근무라지만 항상 연장근무를 했고 월급도 전혀 오르지 않았다"고 한탄했다.  

송 분회장은 "가족들도 여기 못 들어온다. 얼굴 본 지도 한참됐다"며 "벚꽃이 피기 전에 나가고 싶었는데 늦은 거 같다, 바뀐 병원장님이 잘 해결해줄 거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지난 10일 새로 취임한 김대한 병원장은 최근 한 차례 조합원들을 만났다. 송 분회장은 "병원에서 직접 고용을 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오래 일해 온 이곳에서 일 할 수 있게 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서는 기자에게 한 조합원은 "우리 다시 병원에서 일해야 하니까 (병원에 대해) 너무 나쁘게 쓰지 말라"고 말했다. 그 뒤로 송 분회장은 "좋게 써주세요"라고 부탁했다. 또 "생각보다 일이 커져 걱정"이라는 조합원도 있었다.

이들의 이런 마음을 병원 직원들과 새로 바뀐 병원장은 알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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